김홍수 논설위원

입력 2021.06.05 03:18

 

콜롬비아 마약왕 에스코바르는 1980~90년대 미국 마약 시장의 코카인 공급을 독점했다. 세계 부자 7위에 오를 정도로 떼돈을 벌었다. 미국이 그를 잡아가려 노력했지만, 국가 채무 140억달러를 대신 갚아주는 조건으로 의회를 움직여 미국의 범죄인 송환 압력을 피해갔다. 학교, 병원을 지어 기증하고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며 환심을 사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정부를 마음대로 주무른 그의 스토리는 나르코스(마약상), 시카리오(암살자) 같은 드라마 소재가 됐다. 콜롬비아 국민 중엔 대통령 후보를 3명이나 암살한 그를 의적(義賊)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민생이 도탄에 빠지면 의적과 해방구가 등장한다. 중국 수호지의 양산박, 홍길동의 율도국, 영국 로빈 후드의 셔우드 숲 같은 곳들이다. 하지만 이런 유토피아는 소설에서나 가능하다. 국민 재산과 생명을 지켜주는 대가로 세금을 걷는 국가와 해방구는 병존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마피아 같은 범죄 조직은 뇌물을 매개로 정부와 공생하려 하지 통치권을 넘보진 않는다.

▶2014년 중동에서 등장한 이슬람국가(IS)는 특이한 사례다. 시리아가 내전으로 나라 구실을 못 하는 틈을 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가 국가 수립을 선포했다. 자원 입대 용병들로 군대를 만들고, 정부 조직을 갖추고 화폐까지 발행했다. 시리아 외 이라크 영토 상당 부분을 차지할 만큼 세력을 키웠지만 서방 연합군의 공격에 궤멸됐다.

 

 

▶마약왕의 모델과 IS의 모델을 합친 것 같은 새로운 유형의 국가가 베네수엘라에 등장했다. 좌파 포퓰리즘 22년 만에 경제가 완전히 망하면서 국민 10%가 해외로 탈출하고 남은 사람은 음식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정부가 공무원, 경찰 월급도 주지 못하게 되자 범죄 조직이 정부를 대체하고 있다. 1만8000개를 웃도는 범죄 조직이 지역 치안과 식량 공급, 주민 문화 생활까지 책임지며 ‘자치 정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주민들은 “정부보다 낫다”고 한다지만, 뒤로는 마약 거래, 밀수 같은 범죄로 검은돈을 챙기고 있을 게 뻔하다.

▶1950년대 국민소득 세계 4위였던 나라의 몰락을 이끈 사람이 차베스 전 대통령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반미, 반시장 노선으로 한때 한국 좌파 사이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다. 노무현 시절 KBS는 ‘신자유주의를 넘어서, 차베스의 도전’이란 특집 방송으로 차베스를 미화했다. 그 황당한 방송이 전파를 탈 때 KBS 사장이 문재인 정권 방송심의위원장으로 한때 거론됐다.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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