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의 미스트롯2가 8회까지 방영된 가운데 2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높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 참가자중 홍지윤은 독보적인 인기와 함께 우승후보로 거론되고 있는데요.
그녀에 대한 정보와 함께 파란만장한 인생역전 스토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름 : 홍지윤
출생 : 1995년 3월 3일 (26세)
고향 : 전라남도 장흥군
국적 : 대한민국
신체 : 키 166cm, 몸무게 46kg
학력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전통예술학부 연희예술전공 학사
별명 : 윤짱
소속 : 에스피케이엔터테인먼트
인스타그램 : hongjiyunofficial
미스트롯2 홍지윤 고향 키 몸무게 나이 프로필
‘미스트롯2’ 홍지윤은 4일 방송된 본선 3라운드 2차전 ‘에이스전’ 대결에서 최고의 한 방을 선사했습니다. 구사일생으로 녹용 시스터즈에 뽑혀 에이스로 무대에 오른 홍지윤은 국악풍의 노래 ‘배 띄워라’로 마스터와 언택트 심사단을 사로잡았는데요.
장윤정은 "만약 결승 무대였더라면 그냥 바로 진이다"라고 칭찬했고, 조영수는 "노래를 듣고, 곡 작업을 꼭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국악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라고 전했습니다.
박선주는 "조영수 작곡의 노래에 내가 작사를 하고 싶다”고 극찬했는데요. 홍지윤은 마스터 12명 중 9명에게서 100점을 받아 총점 1194점을 기록하여 2위였던 ‘녹용 시스터즈’를 1위로 역전시키고 해당 라운드 진으로 선발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첫 화부터 화제의 참가자로 이름을 알린 홍지윤
홍지윤은 ‘미스트롯2’ 첫 회 엔딩 요정으로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었습니다. 가녀린 몸매에 아이돌급 외모로 시선을 모은 그녀는 “3년전 ‘믹스나인’이라는 오디션 프로에 출연해서 아이돌 최초로 과감하게 트로트를 불렀는데요. 당시 반응이 너무 좋아서 1등을 했다. 그런데 연습을 하던 중 다리를 다쳐 마비가 와서 6개월간 보조 장치 없이 걷지를 못했다. 그래서 연습생 생활을 마감하고 데뷔할 기회를 놓쳤다.”고 데뷔가 무산된 안타까운 이유를 밝혔습니다.
1차 예선에서 ‘엄마 아리랑’으로 올 하트를 받은 홍지윤은 본선 1차 라운드에서도 올하트를 받으며 막강한 진 후보로 손꼽히기 시작하였는데요. 그러나 본선 1차 1대 1 데스매치에서 윤태화를 상대자로 지목하여 10대1로 완패하게 됩니다.
홍지윤은 다행히 탈락자 중에서 구제되었고, 김다현의 픽을 받아 ‘녹용 시스터즈’로 팀 미션을 치룰 수 있게 되었는데요. ‘녹용 시스터즈’는 완벽한 선곡으로 ‘메들리 팀미션’의 진수를 선보였다는 극찬을 받으며 1125점이라는 높은 점수와 함께 2위에 오르는 놀라움을 보여주었습니다.
본선 3차 라운드는 1위 이외의 모든 팀원이 탈락 대상이 되는 서바이벌 미션이었기 때문에 홍지윤은 또다시 탈락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고 탈락에서 벗어나는 길은 에이스전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뿐이었는데요. 홍지윤은 ‘녹용 시스터즈’의 에이스로 무대에 올라 완벽한 무대를 선보여 승리의 여신이 되었습니다.
송가인, 임영웅이 에이스전에서 진으로 선발되었던 만큼, ‘미스트롯2’ 에이스전에서 진으로 선발된 홍지윤은 조금 더 진 왕관에 가깝게 다가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계속해서 극적으로 구사일생하며 뛰어난 무대를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에 많은 시청자들의 응원과 격려의 메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클린버전】 양지은 - 그 강을 건너지마오 ❤미스트롯2 11화❤ TV CHOSUN 210225 방송
양지은 미스트롯2 전곡 노래 모음
미스트롯眞 양지은의 인생곡 ‘붓’은 대한민국을 모독하는 가사!
김정은-文 함께 만든 첫 종북트롯 '붓' 논란 - 조우석 칼럼 2021.03.16 [뉴스타운TV]
TV조선 프로그램 ‘미스트롯2’에서 진으로 뽑힌 가수 양지은이 불렀던 노래 ‘붓’이라는 노래가 논란이 되고 있다. 그 가사가 김정은의 발언을 추종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허용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는 것이다. 종북 논란은 당연한데 오해하지 마시길 바란다. 대중가요까지 색깔론을 벌어지는 게 아니다. 그 노래를 만든 사람이 분명 문재인 김정은의 발언을 염두에 두고 거기에 공감해서 노래를 만들었다고 하고 있고, 때문에 사회적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일단 그 가사 내용을 살펴보겠다.
우선 그 노래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대목을 집중적으로 들어보겠다.
칠십년 세월/그까짓 게 무슨 대수요/함께 산 건 오천년인데/ 잊어버리자 다 용서하자/우린 함께 살아야 한다/백두산 천지를 먹물 삼아/한 줄 한 줄 적어나가세/여보게 친구여/붓을 하나 줄 수 있겠나/붓을 하나 줄 수 있겠나”
자, 이 노래를 어떻게 봐야 할까? 한마디로 이 노래는 좌빨들이 노리는 우리 민족끼리 정신에 아주 충실하다. 함께 산 게 5천년 세월이니 그까짓 분단 이후 70년따위는 잊어버리자는 것이다. 더 가슴 철랑한 게 “백두산 천지를 먹물 삼아서‘ 이 대목이다. 그건 북한 체제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통일의 새 역사를 김정은 중심의 큰 붓을 들어 새로 쓰자는 제안이다. 그래서 이 노래는 분명 종북의 노래다. 분명하다. 반역자 문재인과, 이른바 백두혈통 김정은이 두 사람이 불러주고 대한민국 국민이 입을 모아 부르는 종북의 노래가 맞다. 그 둘이 속삭인다. 과거를 모두 잊고 함께 살자는 것이고, 김정은 체제로 가자는 것이다. 이런 나의 해석은 멋대로가 아니다.
실제로 이 노래의 탄생 배경을 두고 작사 작곡을 한 류선우란 사람은 유튜브에서 2018년 문재인 김정은 회담 때 백두산 천지에 올라갔을 때의 감동을 표현했다고 주장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작사한 것과 마찬가지”라고도 말했다. 문재인의 평양 연설 중 “5천 년 함께 살고, 70년 헤어져 살았다”는 문구도 내세웠다. 그리고 떡하니 김정은이 사용한 어구도 그대로 담고 있다. 그걸 직접 들어보시겠다. 이 노래는 김정은 문재인 공동작사라고 봐야 한다. 실로 섬뜩한 정치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이 종북 노래가 이 나라 요즘 붐을 이루는 트로트로 가지를 쳐나간 희한한 사건이 바로 이 노래 '붓'이다.
그런데 따져보면 볼수록 이상하다. 그리고 섬뜩하다. 이 노래의 중심은 한라산도 금강산도 아닌 백두산으로 설정됐다. 그리고 북한 사람들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세습체제 집안을 백두혈통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게다가 붓을 하나 달라고 계속 구걸한다. 마치 무사가 황제가 하사한 검을 바라듯, 백두혈통 추종자의 모습이 이 노래에 보인다. 그게 김씨 일가를 중심으로 북한에 의한 남한 통일을 하자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물론 이 노래를 부른 여성 가수 양지은은 “이 노래가 오디션 경쟁을 함께 한 동료들에게 바치는 노래”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 여성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는 얘기다. 정말 대중가요를 비롯한 이 나라의 모든 것이 오염되어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게 두렵고 겁이 난다. 희한하게도 이 노래를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리는 것도 힘들고, 문재인 정권에게 그럴 뜻도 없을 것이 분명하다. 왜? 어쨌거나 국민 모두가 멀거니 지켜봤고, 암묵적으로 공감을 했던 게 문제의 문재인 김정은 회담이고, 그걸 저들 역시 통일논의의 일환이라고 태연자약하게 말하기 있다. 또 있다. 그나마 TV조선은 자유주의적 성향이 있다는 매체인데, 다름 아닌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이런 反사회적, 反 역사적, 反대한민국적 노래를 부르게 한다는 것도 정말 의아한 대목이다. 정말 이 나라에 희망은 있는가? 그걸 묻지 않을 수 없다.
16일 오후 뉴스타운TV에서는 "김정은-文 함께 만든 첫 종북트롯 '봇' 논란"이란 제목으로 방송이 진행됐다.
※ 이 글은 16일 오후에 방송된 "김정은-文 함께 만든 첫 종북트롯 '봇' 논란"이란 제목의 조우석 칼럼을 토대로 재구성했습니다.
그동안 믿고 마음을 주고받은 임과 일이 잘 안 풀릴 때 혼자만 애타하면서 그 마음을 주변의 소소한 사물에 의탁하여 푸는 심정을 가장 잘 표현한 노래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가곡은 당나라 때 지금의 쓰촨(四川) 성 청두(成都)에 살던 여류시인 설도(薛濤)가 지은 5언 절구 『봄날의 소망(春望詞)』 제3수를 현대시인인 안서(岸曙) 김억(金億)이 번역하고 김성태가 작곡한 노래다.
‘마음을 함께 한 님과는 맺어지지 못한 채, 공연히 풀매듭만 짓고 있네요(不結同心人, 空結同心草).’ -설도(薛濤)의 『봄날의 소망(春望詞)』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부르는 가곡 중 ‘동심초(同心草)’라는 노래가 있다. 모두 알다시피 가사는 다음과 같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이 시를 지은 설도(768-832)는 자가 홍도(洪度)로 본래 지금의 시안(西安)에 해당하는 장안(長安) 사람이다. 아버지 설운(薛鄖)은 조정의 관료로 있었는데 학식이 연박(淵博·넓고 깊음)하여 어렸을 때부터 설도에게 글을 읽히고 시문을 짓게 하였다. 설도의 미래 운명과 관련하여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즉 부녀가 집 정원에 앉아 오동나무를 바라보고 있다가 아버지가 먼저 한 구 읊었다. ‘마당에 있는 오랜 오동나무 한 그루, 줄기가 구름 속까지 치솟았구나(庭除一古桐, 聳干入雲中).’ 그러자 설도가 대구를 달았는데 이러하였다. ‘가지는 남과 북에서 오는 새를 맞고, 잎은 오가는 바람을 보내는구나(枝迎南北鳥, 葉送往來風).’ 부친은 이 대구를 듣고 그 재주를 기뻐하면서도 이 시구가 딸의 ‘동서남북으로 오가는 손님들을 맞고 보내는’ 운명이 예견되는 것 같아서 걱정을 했다고 한다.
봄날의 소망(春望詞)
花開不同賞, 꽃이 피어도 같이 즐길 이 없고 花落不同悲. 꽃이 져도 함께 슬퍼할 이 없네. 欲問相思處, 묻고 싶어라. 그리운 님 계신 곳 花開花落時. 꽃 피고 꽃 지는 시절에.
攬草結同心, 풀 뜯어 같은 마음 매듭을 지어 將以遺知音. 임에게 보내려 마음먹다가 春愁正斷絶, 사무친 그리움 잦아들 때에 春鳥復哀吟. 봄새들이 다시 애달피 우네.
風花日將老, 꽃잎은 바람에 나날이 시들어 가고 佳期猶渺渺. 만날 기약 아직 아득하기만 한데 不結同心人, 마음을 함께 한 님과는 맺어지지 못한 채 空結同心草. 공연히 풀매듭만 짓고 있네요.
那堪花滿枝, 어찌하나, 가지가지 피어난 저 꽃 翻作兩相思. 괴로워라, 서로 서로 그리움 되어 玉箸垂朝鏡, 아침 거울에 눈물이 떨어지는데 春風知不知. 봄바람은 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얼마 후 부친이 권력자의 비위를 거슬러 쓰촨 청두로 폄적(貶謫·벼슬을 떨어뜨리고 귀양 보냄)하게 되자 온 가족이 함께 이사를 왔는데 또 몇 년 되지 않아 설도 나이 14세에 아버지가 풍토병에 걸려 죽게 된다. 16세 되던 해 모친을 봉양하고 가사를 꾸리기 위해 음률을 잘 이해하고 언사(言辭)를 지혜롭게 풀며, 시부(詩賦)에 뛰어난 능력으로 인하여 예견된 운명처럼 설도는 결국 악기(樂妓: 노래를 부르는 고급 기생, 수청은 들지 않아도 되었다고 한다)로 적(籍)을 올리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 그의 뛰어난 시적 재능은 785년 사천절도사로 온 위고(韋臯)의 눈에 들어 공문을 작성하고 장서를 관장하는 교서(校書)라는 벼슬자리를 추천받게 되고 사람들로부터 많은 중시를 받게 된다. 그는 평생 위고 이래 총 11명의 절도사로부터 불려 다니며 많은 시문을 짓게 된다. 설도는 곧 시단에 널리 이름이 나 백거이(白居易), 원진(元稹), 두목(杜牧) 등 당시 명망 있던 시인들과 많은 시적 교류를 했다. 현재도 원진 및 백거이와 주고받은 많은 창화시(唱和詩)가 남아 있다. 설도는 느낀 바 있어 나중에 돈을 내고 악기의 적에서 탈퇴하여 자유롭게 살게 된다.
◆ 백거이 원진 두목 등 당대 최고 시인들과 교류
설도 41세 때 시작된 10세 이상 아래인 원진과의 늦사랑이 천고에 전해지고 있다. 원진은 설도와 많은 연정의 시를 주고받는데, 그녀를 한나라 때 사마상여(司馬相如)와 짝을 이룬 탁문군(卓文君)에 비유하기도 했다.
◆ 사마상여와 탁문군의 별난 사랑
만년에 설도는 청두 서쪽 완화계(浣花溪) 시냇가에 살며 음시루(吟詩樓)를 짓고 시를 읊으며 지냈다. 당시 쓰촨 지방에는 종이문화가 발전하였는데, 설도는 시를 운치 있게 주고받을 수 있도록 소나무 꽃무늬를 새겨 넣은 붉고 고운 색종이를 직접 제작하여 시인들과 시를 주고받으니 그것이 당시 유명해져 ‘설도전(薛濤箋)’으로 불리웠다. 원진은 쓰촨으로 발령이 났을 때, 한때 설도와 깊은 정을 나누었지만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나자 떠나가고 만다. 원진의 여성 편력과 풍류 끼에 대해 소문을 듣지만, 설도는 일편단심 원진을 기다리니 헤어진 지 10년이 지나서도 원진을 사모하는 시를 남길 정도였다. 결국 맺지 못할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고 만년에는 대나무밭 속에서 검은 색 여도사복을 입고 수도하는 자세로 살다가 세상을 뜬다.
현인은 1938년 경성제2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42까지 우에노[上野] 음악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하였다. 그는 1943년 징병을 피해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신태양극단’에서 활동하다가 1946년에 귀국했다.
1947년에 작곡가 박시춘(朴是春)의 권유로 대중가요 가수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신라의 달밤」은 그 시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이후 한국전쟁 전까지 「비 내리는 고모령」, 「고향만리」를, 전쟁 중에는 군예대로 활동하면서 진중가요 「전우야 잘 자라」를 발표하였다.
같은 시기에 대중가요 「굳세어라 금순아」와 「인도의 향불」, 「꿈 속의 사랑」, 1950년대 후반에는 「나포리 맘보」, 「불국사의 밤」 으로 지속적인 인기를 모았다. 특히 「서울야곡」 등은 직접 작사·작곡한 곡이다. 그는 195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로서, 일제강점기의 트로트와 신민요를 소화하였고, 미국식 대중가요가 개화한 1960년대의 팝 스타일의 가창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다. 1960년대에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현인 전우야 잘자라
현인 굳세어라 금순아
현인 비내리는 고모령
전영 서울야곡
주현미 - 고향 만리 (1949)
조명섭 인도의 향불
현인,조명섭노래모음 연속듣기 트로트 메들리 K-trot Best 7080노래모음 주옥같은노래
"배호 와 그 악단" 운영1965년 데뷔곡 음반 취입[두메 산골 등 6곡] (톱 힛트 레코드)1966년 신장염 발병, [누가 울어,
안개속으로 가 버린 사랑]등 병상 취입 (뉴스타 전속)1967년 [돌아가는 삼각지]발표 (20여주 연속 1위) (아세아 전속)1967년~1968년 각 매스컴 주최 행사에서 가수상 수상 (MBC 10대 가수상(라디오),(TBC 방송가요대상)수상 등 **가수 사상 최초 첫 히트곡 후 6개월만에 10대 가수 선정**1969~1970 년 MBC 10대 가수상 수상 (TV),(신세기 전속, 지구전속)
1971년 11월 7일 신장염으로 투병 중 타계(만 29세) (투병 중 가수활동 6년간 총 300여곡 발표)1981년 - MBC(TV) 특집 여론 조사 (가수 기여도 1위), 좋아하는 가수 1위 (최초 가요 60년사 여론조사)1990년 - MBC(R) 특집 여론 조사
(좋은 목소리 1위)1998년 - 조선 일보 (건국이후 음악 전문가 여론조사 (음악성) 가수 50인중 - 6위)1999년 - 월간 조선 (음악 전문가 조사 - 7위) / MBC(R) 서울 시민 여론 조사 시민 전체 대상 21위 (타계가수 중 1위), 50세 이상 대상 - 10위 (전체 가수 150위 중) / KBC(R) 서울 시민 설문 조사 좋아하는 가수 - 10위2000년 11월 - 배호 길 선정 (삼각지 로터리) (대중가수 최초) (용산구청)2001년 6월 - 배호 기념비 건립 확정 (삼각지 로터리 녹지) (용산구청)